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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普信閣) Bosin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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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Gim on November 15, 2009

이 종각은 1915년 도로를 보수할 때 원래 있던 위치에서 약간 뒤로 옮겨졌으며 1950년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1953년 12월 12일 그 위치에서 다시 뒤로 물려 중건되었고 1979년 8월 15일 다시 뒤로 물려 대지를 145평에서 850여 평으로 확장하고 주위에 돌난간을 돌렸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 연건평 144평의 중층(重層) 누각을 철근 콘크리트조로 재건하고 상층에 종을 걸었다.

Henry Gim on November 15, 2009

clock tower

Henry Gim on November 15, 2009

보신각지(普信閣址)

【분 류】 누정 【지정사항】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102 일대

종로구 종로 2가 10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태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의 제도를 따라 태조 5년(1396) 청운교 서쪽(지금의 인사동 입구)에 각을 짓고 종을 걸어 종소리에 따라 각 성문을 열고 닫게 하였다. 즉 새벽종은 파루(罷漏)라 하여 오전 4시경에 33천(天)을 뜻하여 33번을 쳤고 저녁종은 인정(人定, 속칭 인경)이라 하여 28수(宿)을 뜻하여 28번을 쳤으며 또 도성 안에 큰 화재가 나도 종을 쳐서 성안 주민에게 알렸다. 이 때의 종루(鐘樓)는 2층 5칸이었다. 태종 13년(1413) 종묘 남로에 5칸의 층루를 세우면서 이 종루를 순금사(巡禁司)의 남쪽이며 광통교의 북쪽인 중부 운종가(지금의 종로 네거리)로 옮겼다. [註] 그 후 세종 22년(1440) 종전에 있었던 종루를 헐고 개구(改構)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종각의 규모를 크게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의 규모는 동서 5칸, 남북 4칸으로 위층에는 종을 달고 누 아래로는 인마(人馬)가 다니게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11년(1619) 4월 누각을 새로 지었는데 숙종 12년(1686) 1월 종각에 불이 나서 그 후 다시 건립하였다. 고종 6년(1869) 종로 1가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포전(布廛), 지전(紙廛), 동상전(東床廛) 등과 함께 소실되어 10월에 다시 건립하였으며 고종 32년(1895) 3월 15일 고종이 사액을 내려 ‘보신각(普信閣)’이란 현판을 건 뒤부터 보신각이라 부르고 있다. [註] 이 때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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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taken in Gwancheol-dong, Jongno-gu, Seoul, South Korea

Photo details

  • Uploaded on November 15, 2009
  • © All Rights Reserved
    by Henry Gim
    • Camera: NIKON COOLPIX P90
    • Taken on 2009/11/14 16:54:46
    • Exposure: 0.017s
    • Focal Length: 4.60mm
    • F/Stop: f/2.800
    • ISO Speed: ISO110
    • Exposure Bias: 0.00 EV
    • No f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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